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토 협정 (문단 편집) === 장송협정 === 일본 측의 요구 중 쑹저위안의 면직과 중국의 사과는 이미 실현되었으므로 협정 체결 이후 실시된 것은 29군의 철수였다. 29군이 철수한 후 약속에 따라 철수지역을 보안대가 접수하였다. 보안대는 장윤영이 지휘하는 중국군 보안대와 몽골인 보안대가 따로 조직되어 각각 한족 거주 지역과 몽골족 거주 지역을 수비하였다. 친더춘은 난징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 1. 철수 지역 내에 이미 보안대 4천명을 편성해서 질서를 유지하게 하고 아울러 특별한 보안대 약간명을 다시 조직하였다. * 2. 매 100명의 보안대마다 기관총 1정, 보병총, 권총 약간 정을 배치하고, 필요할 때는 일본군의 동의를 얻어 박격포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 3. 공산당을 공격할 때에 보안대를 이동시킬 수 있다. * 4. 보안대의 경비 할당 및 훈련방법은 모두 여러 제한이 있다. 이같은 방법은 8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해 친더춘의 사직으로 차하얼성 주석 대리가 된 장자충은 각 현성에 몽골인이 한 사람도 없는데 몽골인 보안대가 진주하는 것은 도리어 분규만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반대했으나 일본 측은 오히려 장윤영의 보안대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고 장윤영을 협박하여 8월 5일, 마쓰이 중좌가 장윤영과 <장송협정>을 추가로 체결하여 한족지구의 치안까지 일본군의 조종을 받는 몽골군이 장악해버렸다. 또한 데므치그돈로브의 부하 이수신이 남하하여 12월, 일본 군관과 만주국 공군의용부대의 지원을 받아 차하얼 동쪽의 장성 이북 6개 현을 점령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